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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인 노숙자 사망…텐트 안에는 라면 두봉지

LA한인타운 노상에서 또 한명이 사그라들었다. 21가 인근에서 노숙자 셸터를 운영하는 김요한 신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길거리에서 살아가던 안태홍(65)씨가 지난 18일 밤 숨을 거뒀다는 전화였다.     지난 9일 사망한 한인 노숙자 피터 최(34)씨 이후 들려온 또 다른 비보다. 〈본지 4월 12일자 A-3면〉   LA는 봄 기운이 완연하다. 잿빛 길바닥은 여전히 차갑다. 그 괴리는 좁혀지지 않는 LA의 만성 문제다. 노숙자들에게 현실은 여전히 희망이 없다.    안씨가 죽었다는 길거리로 직접 나가봤다. 그곳에서 한인 노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19일 오전 10시 50분, 올림픽 길과 세인트 앤드루스 교차로 북서쪽 코너다.     이곳은 LA한인타운의 작은 스키드로다. 한인 노숙자 10여명이 텐트를 치고 몰려 산다.   안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는 시끄럽다. 길거리의 사람이었던 안씨의 죽음은 그 소리에 묻히고 있다.   안씨가 살던 텐트 안을 살펴봤다. 작은 전구 하나만 달랑 달려있다. 라면 봉지 두 개가 눈에 띈다. 핏자국이 흥건하다. 냉랭한 텐트 안은 생전 안씨의 삶을 대변한다.   노숙자들도 감정이 있다. 옆 텐트의 노숙자에게 안씨의 사망 소식을 아는지 물었다.   노숙자 박준씨는 “어젯밤이었다. 텐트를 열었는데 안씨가 엎드린 채 죽어있더라”며 “김요한 신부에게 사망 사실을 알렸고, 김 신부가 현장으로 직접 와서 보고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뉴욕에서 사업가로 활동했다. 위험한 길거리에서 산지는 1년째다. 그의 한쪽 눈은 벌겋게 퉁퉁 부어있었다. 사연을 들어봤다.    그는 “한인타운 맨해튼 플레이스 인근에서 텐트에서 자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남성이 들어와 총을 쐈다”며 “그때 사건으로 눈 하나를 실명했다”고 했다.   노숙자도 자리싸움을 한다. 타인종 노숙자들로부터 텃세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인 노숙자들이 한인타운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씨의 삶은 곧 길거리 사람들의 인생이다. 안씨의 사망 소식은 그들에게도 슬픔이다.   안씨의 사연을 묻는 기자 질문에 다른 노숙자들은 “말할 기분이 아니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김 신부도 텐트를 찾았다. 안씨가 눈을 감은 그 자리에 성경 한권을 두고 향을 피웠다. 연고가 없으니 김 신부라도 망자를 챙겨야 했다. 그는 “조만간 셸터에서 장례식을 조촐하게라도 열어줄 계획”이라고 했다.   김 신부는 전화기에 있던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돈 벌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겠다.”   생전 안씨의 밝은 모습이었다. 안씨는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는 순복음기도원과 은혜기도원에서 봉사까지 할 정도로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단, 냉랭한 현실은 의지를 계속 꺾었다.     안씨 뿐만 아니다. 한 블록을 더 걸어가 봤다. 중앙루터교회 앞이다. 또 다른 노숙자인 이강원 씨를 만났다.   그는 과거 아가페 홈미션을 운영했던 사역자였다. 노숙자를 챙겨주던 이가 노숙자가 된 셈이다.   이씨는 아가페 홈미션을 운영하며 언론에도 수차례 소개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씨가 작은 유리 파이프에 힘겹게 불을 붙이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담배는 아니다. 물어보니 마약류를 흡입 중이라고 했다.   그의 몸은 앙상하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았다. 말도 횡설수설이다. 길거리에서의 삶이 얼마나 황폐한 지 짐작이 된다.   치아는 거의 다 부식됐다. 말투는 어눌하다. 이씨는 “길거리로 나온 지 5년이 넘었다”며 “기부금도 줄어들어서 아가페 홈미션을 운영하는 게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남성 노숙자만 있는 게 아니다. 이씨는 “한인 여성 두 명도 이 근처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더는 대화를 이어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리곤 멍한 눈으로 작은 유리 파이프에 입을 댔다.    맑은 하늘이 무색하다. LA한인타운 노숙자들의 삶이다.   LA한인타운=김경준 기자무더위 노숙자 본래 한인노숙자쉼터 한인 노숙자 노숙자 텐트촌

2024-04-21

한인들, 무연고 사망 한인노숙자 28일 장례

노숙자로 지내다 사망한 70대 한인 여성<본지 2월 24일자 1면 보도>의 장례가 시카고 한인들의 정성으로 오는 28일 엄수된다. 장례는 디그니티 장의사(Dignity Memorial) 이효섭 장의사가 절차를 맡았으며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김광태 목사)가 릿지우드공원묘지에 있는 교회묘지를 기증했다. 또 한인이 운영하는 Unidex가 후원업체로 참여했다. 환송 및 하관 예배는 시카고한인교회협의회(회장 최문선 목사)가 맡는 등 시카고 한인 교계를 중심으로 한인들이 뜻을 모았다. 이효섭 장의사는 26일 전화통화에서 “어제(25일) 시신을 모셔왔다”며 “우리(한인사회)가 힘을 쓰지 않았다면 고인은 낙엽처럼 쓸려 사라져 버릴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 같은 한인으로 가족을 보내듯이 보내드리면 좋겠다”며 “아픔을 안고 쓰러진 심령에 동포들의 사랑이 채워지길 바란다. 홈리스의 장례가 아닌 우리 가족의 장례처럼 동포들이 상실의 슬픔을 나누며 관 위에 놓는 꽃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미국명 Ho Pun Padgett로 밝혀진 김 모씨는 미군과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시카고로 온 뒤 곧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 정신질환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노숙자로 전락했으며 시카고에는 김 씨의 남동생 또는 오빠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끝내 고인을 찾지 않았다. 김 씨는 그동안 ‘생년월일: 3-4-1941, 사망일자: 2-17-2014 9:42am, 사망지: University Of Chicago’라는 이름표가 붙여진 채 무연고자로 쿡카운티 검시소에 안치돼 있었다. 김 씨에 대한 장례는 데스플레인의 에이럴(Oehler) 장의사(2099 Miner St.)에서 거행된다. 환송예배는 28일(금) 오후 3~6시, 환송예배는 29일(토) 오전 10시 릿지우드 공원묘지에서 엄수된다. 임명환 기자

2014-03-26

사망 한인 노숙자 장례 후원

노숙자로 지내다 사망한 70대 한인 여성과 관련<본지 24일자 1면 보도> 디그니티 장의사(Dignity Memorial) 이효섭 장의사가 장례식 후원을 약속했다. 이효섭(사진) 장의사는 14일 본지에 전화를 걸어와 “이민자 모두 좀 더 잘 살기 위해 아메리칸드림을 가지고 미국에 왔다”며 “그러나 이민 생활이 누구에게나 호락호락 하지는 않다. 그 분의 삶도 마찬가지로 안타깝다. 우선 장례를 책임지고 돕겠다. 도울 수 있으면 한인 동포 모두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김 모(미국명 Ho Pun Padgett)씨는 지인에 따르면 미군과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시카고로 온 뒤 곧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 정신질환까지 앓았다. 이후 노숙자로 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지인에 따르면 시카고에 김 씨의 남동생 또는 오빠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김 씨의 시신이 안치된 쿡카운티 검시소 측은 곧 무연고자로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의사는 “사망자에 대한 법적 절차가 끝날 동안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김 씨는 장례 절차도 없이 공동묘지에 묻히고 만다”며 “모든 사람의 인생, 삶이 마지막에 덧없이 쓰러지면 안된다. 죽음도 존엄성이 있어야 한다. 돌아가신 분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싶다. 동포들과 종교계가 함께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장의사는 “검시소에 곧 연락을 취해 김 씨의 장례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릿지우드 묘지 등 편안한 곳에 모시려고 한다. 그 분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한인 몇 분이라도 모여 그 분의 명복을 빌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사망한 김 씨가 1998년 시카고에서 발급받은 여권에 따르면 1941년 3월 4일생으로 한국에서 출생했다. 임명환 기자

2014-03-14

길에서 숨진 70대 한인 노숙자

시카고에서 노숙자로 지내던 70대 한인 여성이 숨졌지만 가족과 연락이 닿질 않아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지난달 17일 시카고에서 한인 여성 김 모(미국명 Ho Pun Padgett)씨가 숨졌다. 김 씨는 노숙자로 오랫동안 살아왔고 최근에는 시카고 다운타운 인근의 쉘터에서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씨는 미군과 결혼, 시카고로 이민왔지만 곧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정신질환에도 시달렸다. 이후 노숙자로 전락했고 한인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나마 김 씨의 사연이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친구가 한인에게 이같은 소식을 전달하면서다. 김 씨는 노인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자는 주위의 권유에도 한사코 미루다가 길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와 알고 지내던 한인 권 모 씨는 12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김 씨의 가족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권 씨는 “시카고에 김 씨의 남동생 혹은 오빠가 거주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른 가족들과는 연락이 닿질 않아 시신 인수가 불가능하다”며 “현재 김 씨의 시신은 쿡카운티 검시소에 안치돼 있으며 얼마 있지 않으면 검시소측에서 무연고자로 처리할 것이라고 들었다. 그전에 가족을 찾아 장례식이라도 치르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본지가 입주한 김 씨의 미국 여권에 따르면 김 씨는 1941년 3월 4일생으로 출생국가는 한국으로 되어 있다. 여권은 1998년 시카고에서 발급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201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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